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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바스터즈 (Inglourious Basterds, 2009)
타란티노가 말하는 내 생에 최고의 걸작 (이후부터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마지막 챕터로 이동해주세요~)
전
작 <킬 빌>에 이어 다시 한번 챕터 구성을 들고 나온 <바스터즈>의 첫 번째 챕터, 첫 번째 장면부터
'아! 역시 타란티노 ㅠ'라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첫 번째 챕터 답게 여기에는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감독의 의도를
눈치챌 수 있는 장치들이 많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일 수록 그 감독의 의지가
엿보일 때, 그래서 극장에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황홀한 경험을 하게 되는 순간에 나도 모르게 절로 미소가 지어지곤 하는데, 이
영화는 바로 이 첫 챕터 부터 미소를 참을 수가(정말 정신나간 사람처럼 표정관리 안되게 커다란 미소를 지었을 정도로) 없었습니다. 프랑스 어느 시골 마을에 자리잡은 작은 집에 독일군 장교를 실은 자동차 한 대가 등장하면서부터 본색을 드러내는 이 작품은, 엔니오 모리꼬네의 환상적인 음악이 더해져 완벽한 서부영화의 구성을 보여줍니다.
마치 결투를 준비하는 레오네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점점 가까워지는 독일군 차량을 보며 가족들을 집 안으로 피하게 하고 결연하게 무엇인가를 준비하는 남자의 모습을 비추는 시퀀스는, 완벽한 서부영화의 한 장면인 동시에 완벽한 타란티노 영화의 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적절한 슬로우모션과 '엘리제를 위하여'가 더해진 엔니오 모리꼬네의 비장미 넘치는 음악은 아름다움과 동시에 긴장감은 전하는데, 레오네의 주인공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타란티노의 주인공들은 훨씬 더 수다스럽다는 점이겠죠. 타란티노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수다'라는 장르(누군가 타란티노 영화의 장르를 물으신다면, '수다'라고 말하겠어요 ㅎ)로 매번 풀어내곤 했는데, <바스터즈> 역시 굉장히 많은 수다들로 채워져있지만 전작이었던 <데쓰 프루프 >
와는 다른 의미의 수다라고 할 수 있겠네요. <데쓰 프루프>의 수다는 우리가 흔히 아는 수다라는 것을 배경으로 스턴트
맨과 옛날 영화들의 향수를 적절히 풀어내면서 쾌감을 이끌어냈다면, <바스터즈>의 수다는 이 첫 번째 시퀀스에서 잘
보여주듯 극적인 긴장감이 매번 녹아있습니다(한스 란다가 등장하는 장면은 물론이고, 알도 레인과 바스터즈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웃고 떠드는 듯 하지만 극적 긴장감이 충만하죠).
이 첫 번째 챕터에서 느낄 수 있는 건 단순히 영화의 분위기나 '이런
식으로 갈꺼다'라는 타란티노의 의도 뿐만은 아니죠. 이 영화의 중요한 설정 중 하나인 여러 언어로 인한 언어유희들과 이로서
가능해진 많은 장면들을 미리 짐작케하기도 합니다. 영화는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히틀러와 괴벨스 등 나치가 등장하고, 나치를
사냥하는 미국인 바스터즈들이 존재하며, 이들이 작전을 펼치는 대부분의 배경은 프랑스 지방이죠. 그렇기 때문에 바스터즈들은 영어를
한스 란다를 비롯한 나치들은 독일어를, 그리고 쇼산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단순히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각자의 언어를 사용한 것 이상의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이 차이를 국내처럼 영어 더빙에 우리말 자막에
익숙한 환경에서는 좀 더 실감나게 받아들이기 힘든 점도 있는데, 아마도 평소에 자막없이 자신들의 언어로 대부분의 영화를 즐겨왔던
북미 지역의 관객들이라면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우리는 아무래도 영어, 독어, 불어, 이태리어가 섞여
나와도 하나의 자막으로 보는 것에 익숙해 있다보니 일부러 억양이나 언어를 구분해서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 쉽게 뉘앙스의 차이를
알아차리기 어려운 부분도 있거든요).
이 영화는 영어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독일인들끼리 나누는 독일어,
프랑스인들끼리 나누는 프랑스어는 영어 자막으로도(그러니까 해석이 되지만) 제공이 되지만, 독일어를 못하는 프랑스인이 독일어로
진행되는 대화를 듣게 될 때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진행되는 대화들은 영화에서도 역시 자막이 지원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건
아주 간단하게 생각해서 '왜 못 알아듣는 상황을 굳이 넣었느냐'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런 언어적 차이로 오는 문제들은
영화에서도 여러 상황들을 통해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첫 챕터에서 영어를 못알아듣는 유태인 가족들을 이 '못알아듣는'
상황을 이용하여 한 번에 처치해버리는 장면이나, 정체가 탄로나게 되는 결정적 요인이 억양에 있다거나 하는 몇 가지 언어적 설정
장면들은 굉장히 직접적인 표현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알도 레인 역할을 맡은 브래드 피트의 사투리 억양도 또 다른
설정이죠;)
그런데 이런 직접적인 표현들말고 내용적으로 보았을 때 이런 다국어의 차이와 이해에서 오는 문제는 캐릭터들간의 힘의 저울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크리스토프 왈츠가 연기한 한스 란다의 경우 유
태인들을 잡아내는 방식에서 추리의 우수함이나 집요함 때문인 것도 있지만, 이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들을 압도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언어의 구사가 가능하다는 것이죠. 독일어는 물론 프랑스어에도 능통하며, 후반부의 투항을
위해 알도와 그의 상관과 전화 통화할 때 알 수 있었듯이 영어 역시 물흐르듯이 자연스러웠으며 이태리어 역시 어설픈 듯
겸손(?)을 떨긴 했지만 기본적인 것들을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이었죠. 이
렇듯 여러 언어를 이해하고 구사할 수 있었던 한스 란다는 타 언어의 장벽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던 다른 주요 캐릭터들과는
달리 이런 어려움 없이 한 단계 위에서 모든 상황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죠.
사실 처음 두
번째 챕터가 지났을 때까지만 해도 첫 번째 챕터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한스 란다와 두 번째 챕터에서 인상을 남긴 알도
레인이 각각의 대칭점을 대표하는 캐릭터들로 등장해 마치 홍콩 무협영화와 같이 서로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다가 마지막에가서
그럴듯한 비장한 만남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이제와 생각해보니 타란티노의 생각에 비하면 이건 참 시시했을;)생각을
했었는데, 이런 식의 구성은 이미 <킬 빌> 같은 무협과 복수를 다룬 영화에서 보여준 적도 있기도 하고, 이 것보다는
<바스터즈>에서 보여준 방식이 오히려 더 타란티노 답다고 해야 될까요. 처음부터 대단한 전쟁 영웅이 아니라 그저
양아치스러운 알도 레인을 비롯해, 다들 그렇게 스러지지는 않을 것만 같았던 그의 부하들이 지하 술집에서 단 번에(물론 그 전에
엄청난 대화들이 있었지만)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나, 꼭 역사와 달라서가 아니더라도 히틀러가 그냥 그렇게 쉽게 죽음을 맞게 되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그렇게 치밀하고 완벽하고 압도하는 캐릭터였던 한스 란다가 어찌보면 너무도 어설프고 허무하게 당하고 마는
장면은, '거대한 농담'(거대한 농담에서 중요한건, 아무리 거대하더라도 결국은 농담이라는거죠)을 하려던 타란티노의 의도에 딱
어울리는 설정이었던 것 같아요.
'
난 원래 그저 농담을 하려던 거였어'라고 말하는것 처럼요. 이런 결말이 주는 감흥은 이것대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만약 이
영화가 보통의 영화들처럼 두 주인공 혹은 한스 란다가 끝까지 완벽함을 보여주면서 완벽한 성공을 거두던지 아니면 장렬하게 최후를
맞는 영화였다면 훨씬 더 극적이긴 했겠지만(그래서 더 좋아하는 분들도 계셨을테지만), 무언가 타란티노의 농담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가 되었겠지요. 타란티노가 만든 캐릭터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뒤에 서 있는 감독 타란티노가 보이곤 해 재미있기도 합니다.
그 뒤에서 '이러면 어떨까?' '저러면 어떨까?'하며 좋아하는 그의 얼굴이 가끔 보이거든요 ^^
타란티노의 영화는
거의 대부분이 항상 영화에 대한 은유들과 애정들로 담겨있던 것이 사실이지만, <바스터즈>에서는 은유를 넘어선 상당히
직접적인 영화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편입니다. 그러니까 2차 대전을 배경으로 다루긴 하되 그 속에서 '히틀러가 나치
홍보영화 시사회에 직접 참석하고 이를 기회로 공작이 벌어졌다면 어떨까?'하는 생각 같은 것이 깊게 반영된 경우처럼 말이죠. 이
번 작품에서는 나치 홍보영화 '민족의 자랑(Nation's Pride)'를 비롯해 당시의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던 배우들과
작품들, 감독들에 대한 이야기가 일상 대화로 쉴세 없이 지나가는데, 하나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이 당시의 영화적 정보들을 좀 더
알고 있었더라면 여기서 얻는 재미가 더 있었을텐데 하는 점이었습니다. <킬 빌>을 보며 <죽음의 다섯
손가락>등 수많은 영화를 발견하고 재미있어 했던 것과 비슷하게 말이죠.
2차대전과 영화라는 접점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멋진 장면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프리미어에 참석한 히틀러와 괴벨스 등 나치의 주요인사들을 죽음으로 이끌기 위해 극장주인 쇼산나는 극장을 불 태워버릴 계획을 세우는데, 영화의 필름이 종이보다 3배나 더 잘 탄다는 이유로 수많은 필름들을 스크린 뒤에 쌓아놓고 불을 붙이는 장면이나, 나치 선전 영화를 보고 있던 나치들에게 영화로서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면은, 굉장히 영화적이면서도 그로테스크함과 동시에 독특한 아우라가 느껴지는 굉장히 인상적인 장면이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 쇼산나와 졸러 일병이 죽음을 맞게 되는 장면에서의 슬로우 모션도 멋졌구요(<바스터즈>에서 슬로우 모션이 사용된 장면들은 전부 과함없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참 좋은 배우들이 인상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낸 <바스터즈>에서도 유난히 돋보이는 한 명을 꼽으라면 누가 뭐래도 '한스 란다'역할을 맡은 크리스토프 왈츠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액션이 그리 많지 않은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모든 장면을 긴장감 넘치게 만든 이가 있다면 바로 그 일텐데,
차분함과 광기를 동시에 갖고 있는 한스 란다라는 캐릭터는 그를 통해서 정말 완벽하게 표현되었는데, 올해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이 전혀 어색해보이지 않을 정도로 단연 압도하는 연기였습니다. 알
도 레인 역할을 맡은 브레드 피트의 경우 뭐 이제 더이상 이런 역할을 맡는 것이 새로울 것은 없지만, 챕터 2에 처음 등장했을
때 그 독특한 억양과 말투가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오더군요. 국내에서는 타란티노 감독, 브래드 피트 주연, 이렇게 홍보된 감이
있어서 실망한 이들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챕터 별로 같지만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구성으로 보았을 때 한 축을 담당하는 인상적인
연기였습니다.
앞서 글 초반 부에 잠시 언급하기도 했었지만 이번 작품에서 배우들의
연기나 타란티노의 연출력 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건 바로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이었습니다. 모리꼬네의 음악은 감동적일 땐
감동적이지만 이런 장르영화에서는 그 특유의 쓸쓸함을 매번 잘 담아내곤 하는데, 첫 번째 챕터에서는 마치 서부영화와 같은 분위기를
내는데 큰 공을 세우더니, 그 다음 부터는 적제적소마다 챕터를 구분 짓기도 하고 인물들의 뭐라 말하기 어려운 쓸쓸함을 잘
대변하는 장치로서 훌륭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운드트랙 여기 정말 소장해야할 OST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리꼬네와 타란티노의 선곡능력이라면 사실 두말할 필요가 없지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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